정계에 발을 디딘 대만의 동성애자 정치인들 …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들의 투쟁 - BBC News 코리아 (2024)

정계에 발을 디딘 대만의 동성애자 정치인들 …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들의 투쟁 - BBC News 코리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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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테사 웡
  • 기자, BBC 아시아 디지털 기자

활기찬 대만 정치계에서도 황지에 후보(31)는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다. 군데군데 분홍색이 섞인 헤어스타일이나 코스프레에 대한 애정 때문만은 아니다.

열정적인 연설과 진보적인 견해로 유명한 황 후보는 지난 1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새 역사를 썼다.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의원이기 때문이다.

황 의원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의 새로운 이정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까지 따라와 준 대만인들에게 매우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물론 최초의 공개 동성애자 의원으로서 분명 책임감을 느낀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성소수자(LGBTQ)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대만은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있어 아시아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 중 하나다. 지난 2019년엔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이젠 서로 국적이 다른 성소수자 커플도 인정한다. 게다가 동성 부부의 입양도 허용했다.

시민운동가들은 황 의원 외에도 성소수자임을 고백한 정치인이 대만 내 적어도 십여 명은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중엔 레즈비언인 미아오 포야 타이베이 시의회 의원도 있다. 황 의원과 함께 올해 1월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성소수자 후보다.

지난 2016년엔 오드리 탕이 차이잉원 총통에 의해 디지털장관으로 임명됐는데, 이는 대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 내각 장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보수파가 부상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성정체성이 애초에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한편 황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민진당 소속 후보로 민진당의 표밭인 가오슝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몇 년간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의 정치적 커리어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환경 보건 연구, 저널리즘 등에서 잠시 경력을 쌓은 황 의원은 진보 성향의 작은 정당에 입당해 2019년 가오슝 지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다음 해엔 보수 성향의 정치인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한궈위 전 가오슝 시장에 정면으로 맞서며 이름을 알렸다. 시의회 회의 중 벌어진 말다툼에서 황 의원이 짧지만 명료하게 반박하기 전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날 것과도 같은 그 분노의 순간에 대만인들은 주목했고, 황 의원은 인터넷상에서 “눈알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새로운 팬들을 얻게 됐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며 그를 철저히 조사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어느 타블로이드지가 황 의원의 연애 생활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 황 의원은 일부 의혹에 대해선 부인하면서도 자신이 양성애자임은 분명히 밝혔다.

황 의원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언론에 의해 강제로 동성애자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며, 부모님 또한 신문에서 접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공개하지 않았으리라고 덧붙였다.

황 의원은 “내 성정체성에 대해 말하기 주저한 적은 없지만 특별히 내가 이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성소수자임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상황은 이 사회에 성소수자들이 예외적이고, 특별하며,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황 의원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공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한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아울러 황 의원은 의회에서 성소수자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황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동성 부부의 생물학적 자녀 허용이야말로 자신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현재 대만 의회는 현재 동성 부부의 시험관 시술과 같은 보조 생식술 접근 허용을 고려 중이다.

그러나 전투적이기로 유명한 대만의 의회에서 유일한 동성애자인 황 의원이기에 정적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성 및 정체성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도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현 의회를 이끄는 입법원장은 과거 황 의원이 눈알을 굴렸던 상대인 한궈위다.

“제 활동이 기대만큼 좋지 않으면 이건 다 제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상황이 벌써 예상됩니다 … 성소수자 공인들이 직면하는 흔한 상황이죠.”

황 의원은 이러한 공격이야말로 “충분히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 환경”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면서, 심지어 많은 이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꽤 우호적인 대만에서조차 실제로는 수많은 공인 혹은 유명인들이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황 의원은 종종 연인이나 배우자와 함께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성애자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은 혼자 활동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황 의원의 파트너는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야 할까” 두려워 함께 나서지 못한다.

한편 여전히 장애물에 직면한다고 말하는 성소수자 정치인은 황 의원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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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오 시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처음 정계에 발을 디뎠을 때 당내 고위 관료들로부터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크게 드러내지 마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선거 전단에 분홍색을 더 많이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아오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미아오 의원은 유권자들이 자신을 그저 동성애자 그 이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강조했다.

“제 성정체성에 대해 공개하는 순간부터 유권자들은 그것에만 집중할 것이니까요 …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낙인이 찍히는 셈입니다.”

겉으로만 보기엔 성소수자들을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만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투쟁이다.

과거 대만에서도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선 의견이 크게 엇갈렸으나, 지난 5년간 정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선 이에 대해 옹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민의 69%가 동성 결혼 허용에 찬성하며, 약 77%가 동성 부부의 입양 허용에 찬성한다.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매년 수만 명이 몰린다. 활기찬 성소수자 축제를 즐기고자 수많은 성소수자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타이베이는 ‘동양의 샌프란시스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5월엔 대만의 드래그퀸이자 인기 리얼리티 쇼의 우승자이기도 한 님피아 윈드가 차이잉원 당시 총통의 초청을 받아 집무실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는 성소수자들을 단순히 인정한다는 수준을 넘어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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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에서 '전 세계를 위한'LGBT 프라이드 행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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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sai Ing-wen / Facebook

한편 이렇듯 정부가 진보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젊은 부모들의 태도가 변하고는 있으나, “남의 자식이 성소수자인 건 괜찮지만, 내 자식이 그러는 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게 ‘아카메디 시니카’에서 중국어권 커뮤니티 내 성소수자 이슈를 연구하는 리우 웬 연구원의 설명이다.

한편 에선 최근 총선 이후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다시 득세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성소수자 단체 ‘대만 동지 핫라인 협회’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이자 학자인 리타 장은 “대만 사회가 계속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라고 100% 낙관할 수는 없다”면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다시 부상하고 있기에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만 평등 캠페인’의 조이스 텅 이사 또한 성소수자 문제가 “보수적인 정치 세력에 의해 여전히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선거 기간 중엔 양당 구도 중 3위로 떠오른 ‘민중당’ 소속 한 후보가 미아오 의원의 외모 및 성별 표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트렌스젠더에 반대하는 플랫폼에서 시위를 벌이는 소규모 정당도 있었다. 한 보수 단체는 성소수자 의원들에게 투표하지 말자며 경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1월 총통 선거에서 청년층의 지지를 받았던 커원저 민중당 대표는 동성애를 정신적인 문제로 몰아가는 듯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커 대표는 동성 결혼에 대해 애매모호한 의견을 내며 표를 얻고자 이 문제에 대해 말을 바꾼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에 대해 커 대표는 자신은 한 번도 동성 결혼에 반대한 적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다시 부상하는 이유는 바로 대만 사회가 많은 진보적인 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미아오 의원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진보를 많이 이룬 만큼) 일부의 반대 의견도 그만큼 더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아오 의원은 대만이 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

“대만 사회는 매우 다양합니다.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견해부터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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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언젠가 대만에선 동성애자 총통이 탄생해 아시아 최초로 커밍아웃한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러한 질문조차 무의미해지길 바란다. 미아오 의원은 “나는 대만 유권자들이 성별, 이성애자 여부 등 개인의 정체성을 총통 선택 시 그다지 중요한 요인으로 여기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황 의원도 같은 반응이었다. 당선 이후 그는 성소수자 인권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엔 의회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했으며,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홍콩과의 연계를 구축하는 의회 내 단체의 의장도 맡고 있다.

황 의원의 목표는 “나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도 공적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면 성과에 대해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 의원은 “소위 ‘유리 천장’이 없는 사회, 내 정체성으로 인해 어디서나 벽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대만 사회를 꿈꾼다며 마무리했다.

추가 보도: 조이 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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